하나님께 부요한 자

 

(12:13)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12:14)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12:15)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버킷 리스트 라는 말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말합니다.

혼자 여행하기, 스카이다이빙, 번지 점프, 맛있는 음식 먹기, 유명한 여행지 가보기, 가족사진 찍기, 봉사하기, 기부하기 등등 자기가 죽기 전에는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요?

내가 스카이다이빙도 못해보고 죽다니 하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요? 맛있다는 음식을 못 먹어보고 죽다니, 뉴질랜드가 900국이라던데, 거기도 한 번 못 가보다니 하면서 땅을 칠까요?

내 통장에 10만불도 없다니, 그래서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다니 그것이 참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까요? 그런 외형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 죽음 앞에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런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삽니다. 그래서 그것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희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삶 속에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은 우리가 정말 중요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1. 먼저 탐심을 물리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탐심이란 탐심은 더많이 갖고자 하는 마음(욕망)’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필요 이상을 원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소유의 만족을 추구하고자 끊임없이 생기는 욕심을 말씀합니다.

 

여러 사람을 가르치시는 중에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요청합니다.

선생님 제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누게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이 이 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주님이 이 동생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겪는 문제에 관심이 없으시다거나 공정하시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동생의 마음속에 탐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많이 가진 것의 문제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부한 것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이 가지는 부유함의 축복을 약속하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부분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가진 것을 선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가지고자만 하는 마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모든탐심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꼭 재물뿐 아니라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종류의 탐심을 가리킵니다. 더 좋은 집에 거하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음식을 먹을려고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려고 하는 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필요 이상을 원하는 마음을 , 즉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합니까?

 

첫째 그것은 탐심은 우리의 영혼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자인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16) 이 사람은 이미 부자였고 더 큰 부자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부자에게 넓은 농지가 있었고, 풍성하게 수확했습니다.

농사만큼 정직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부정적인 방법이나 사기 행각으로 소출을 풍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부자는 열심히 일했고 그에 대한 결과로 풍성하게 거둔 것입니다.

 

농사는 특별히 농사를 짓는 사람의 성실함도 중요하지만 때에 맞춰서 비가 오고 해가 비추고 하는 것이 풍성한 수확을 얻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부자의 풍성한 수확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로 이런 복을 약속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부자의 상황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일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상황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부자가 많은 부를 얻게 되었을 때의 반응입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17)”

풍년이 들어 부자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행복한 고민입니다. 쌓아 둘 곡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적당히 나에게 필요한 것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부자라서 필요한 것은 넘치니 다른 사람에게 그냥 나눠주거나 기부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곡식을 팔아 돈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18)”

부자는 일단 자신의 재물을 쌓아두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곳간을 더 크게 짓고 거기에 곡식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부자는 더 많은 곳간을 세울 계획입니다. 정말 많은 곡식을 거둬들인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나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일은 아닙니다. 큰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자기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보입니다. 이 부자가 왜 쌓아둘려고 했느냐 하는 이유가 문제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9)”

부자는 자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제 먹을 것, 쓸 것은 충분하니 나를 위해 살자, 일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먹고 마시고 싶은 것 마시고, 즐기고 싶은 것 즐기며 살자. 이것이 부자의 계획입니다.

 

오늘날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어떤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 된 것입니다. 꾸준히 잘 되고 있었는데 어느 해에 어떤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투자를 해봤는데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습니다. 돈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계획을 세웁니다. ‘지점을 10개쯤 열고 그것을 관리할 사람을 세우자. 그리고 나는 일선에서 물러나 수익만 누리자

이제 굳이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고 나는 이제 남은 생을 즐기며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사실 꿈같은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삶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실 돈만 충분하다면 굳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이 부자가 그 꿈을 이룬 것입니다. 이 땅의 기준에서 이 부자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정말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그 노력의 대가를 받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자의 결정에 대하여 주님의 진단입니다.

하나님이 이 부자에 대해 평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20)

여러분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보십니까?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명하고 분별력 있게 처신한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했고 그에 대한 결과를 누리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성공한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재물을 쌓아 놓으면 그 쌓아놓은 재물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물질로써 영혼의 양식과 위안을 삼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자는 크게 지을 창고에 곡식과 물건을 가득 채울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재물로써 영혼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자랑하지만, 역사상 오늘처럼 영적, 정신적으로 빈곤에 허덕였던 시대는 달리 없을 것입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다 마음이 지치고 곤비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의 원인을 물질의 결핍에서 찾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불행한 것은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 더 많이 벌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들은 이 부자와 본질상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가 영혼의 갈급함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육은 육이고 영은 영입니다. 영의 갈급함은 신령한 것으로 채워집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술과 향락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으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시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기쁘고 평안한 사람은 술에 취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참 만족을 누린다면 육신의 향락에 탐닉할 이유가 어디있겠습니까?

 

물론 이러한 말씀을 드린다면 부자를 시기하여 혹은 재물의 부를 누려보지 못하여 그러하다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장 부유했고 가장 많은 쾌락을 누렸던 솔로몬의 말을 언급하겠습니다.

(2:3)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2:4)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2:7)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2:8)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2:9)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2:10)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2:11)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주님이 재물을 쌓기만 하던 부자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신

둘째이유는 재물이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2:15)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더라도 금방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해를 살 것이고 그동안 쓸 것이 충분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읍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읍니다. 자신의 소유는 자신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

이 땅에서의 삶이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부자에게 오늘 밤에 그 삶이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소유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자에게 그 삶이 끝나면 너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물론 남겨놓은 유산은 자녀들의 소유가 될 수 있겠지요. 그 재산은 더이상 그 부자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되는 것인지가 아니고 그 부자는 수고하여 얻은 재물을 가치있게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 부자가 그가 얻은 많은 재물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줄을 알았다면 그는 쌓아놓기만 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비유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비유 속의 부자와 동일한 삶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면 다 돌려드려야 할 그것들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붙들며 살고 있습니다.

 

이사 갈 집이 아직 다 준비가 안돼서 일주일 정도 원룸에 머무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원룸에 수도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할까요? 고칠 것입니다. 일주일을 사는데도 수도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룸에 벽지가 마음에 안 든다면 어떻게 할까요? 벽지를 새로 할까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일주일이면 나가는데 벽지를 새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주일 머물 원룸을 잘 꾸미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이 부자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일시적인 것을 마치 영원한 것처럼 붙들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

이와 같으니라는 말씀은 갑자기 훅 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리석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중요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삶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같은 장소에서 말씀하신 누가복음 1233절을 보면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어떤 자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이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즉 여기서 예수님은 하늘에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6:19)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6: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6: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저축을 하늘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무슨 교회에다 헌금을 많 하라는 그런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재물을 사용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일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바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여기서 구제한다는 것은 꼭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준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구제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소중한 부분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더 넓게 해석하면 더불어 함께 산다는 말입니다.

나사로와 같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의 도움 없이는 못 사는 삶에 함께 사랑을 나누는 삶입니다. 즉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하나님께 부요한 삶은 하나님이 관심하시는 대상 이웃과 더불어 살고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이런 삶의 표본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부요한 삶이었습니다.

고후 8:9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늘의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심으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진 모든 것으로 아낌없이 나누셨습니다. 예수님 혼자 드셔도 충분치 않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도 나누셨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나누셨습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 나누어주어 더 이상 나눌 것이 없는 상태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부활로 말미암은 영생도 혼자 독차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도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세상의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심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부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겨놓으신 것임을 아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를 보면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말할 때마다 ()를 붙입니다. “내 곡간” “내 곡식” “내 물건” “내 영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열거한 것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본디부터 그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내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도둑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부자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7절에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비단 이 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느 하나 내 것이 없읍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내 부도 그렇고, 내 건강도 그렇고, 내 지식도 그렇고, 내 자녀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내 시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본래부터 우리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우리의 생명부터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에 빈 손 들고 나오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청지기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욥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불시에 재앙을 만나 모든 재산과 열 자녀를 잃었으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고 하였던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재물을 받아 주인을 위하여 잘 manage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쓰면 안되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것은 강도나 다름없읍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합니까? 교회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의 시간은? 여러분의 자녀는?...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알고 청지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것이 원래부터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듯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종 된 우리에게 각자의 역량에 따라서 달란트를 맡겨주신 것입니다. 주인이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또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 또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재능을 주셨습니다.

왜 주신 것일까요?

그것 가지고 열심히 장사해서 많은 이문을 남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받은 재능을 가지고 선한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선한 일을 해야 될 의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자신이 재물의 청지기 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건강과 두뇌와 재물을 가지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성공하고 업적을 많이 쌓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자기의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둔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가능한 모든 것을 저축해서 가능한 그 모든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가 옥스퍼드에 있을 때 한 해 수입이 30파운드(40)였는데, 그는 28파운드로 생활하고 남은 2파운드는 남에게 베푸는데 사용했습니다. 그 후에 그의 수입이 60파운드, 90파운드, 120파운드로 증가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28파운드로 생활하면서 나머지 돈을 남에게 베푸는데 사용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돈의 노예가 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거든 그것 가지고 거룩하고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최근 심리학자들은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장수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줄 줄 아는 사람들이 고통과 아픔도 적게 느끼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며 스트레스도 적고 질병에도 덜 걸린다는 것입니다.

금연이나 주 4회 이상의 운동보다도 구제하는 일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합니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학자들이 5년간 400명의 노인부부들을 조사한 후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수명이 훨씬 더 길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 연구의 책임자인 브라운 교수는 단언하기를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말했답니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와 연구는 두 개 이상의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향후 5년간 죽을 확률이 63%나 줄어든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에쿠아도르 선교사 짐 엘리엇은 복음이 한번도 전해지지 않았던 브라질 아우카 부족에게 선교하러 들어가는 날 그들에게 무참하게 칼과 화살로 살해를 당했습니다. 선교사들의 손에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총이 있었음에도 그들을 총을 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저들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달려드는 저들을 죽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영원히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영원히 간직하지 못하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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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2020.2.9. 은혜로 받은 구원 그리고 행함으로 받는 축복 맨하탄한인교회 2020.02.13 57
54 2020.2.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 맨하탄한인교회 2020.02.02 76
53 2020.1.26. 순종연습 맨하탄한인교회 2020.01.29 47
52 2020.1.19. 복 있는 사람 맨하탄한인교회 2020.01.23 45
51 2020.1.12. 세례 요한을 죽인 자들 맨하탄한인교회 2020.01.14 125
50 2020.1.5. 꿈을 갖고 사는 사람 맨하탄한인교회 2020.01.08 48
49 2019.12.29. 다윗의 버킷리스트 맨하탄한인교회 2019.12.31 53
48 2019.12.22.동방박사들의 경배 맨하탄한인교회 2019.12.24 118
47 2019.12.15. 두 가지 구원 맨하탄한인교회 2019.12.18 20
46 2019.12.8. 유윤철 목자님 설교 요약 맨하탄한인교회 2019.12.09 29
45 2019.12.1. 기도의 진정성 맨하탄한인교회 2019.12.04 37
44 2019.11.24. 감사습관 맨하탄한인교회 2019.11.27 43
43 2019.11.17. 없으며 없을지라도 맨하탄한인교회 2019.11.20 44
42 2019.11.10. 자기를 낮추는 자 맨하탄한인교회 2019.11.14 46
41 2019.11.3.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할일 맨하탄한인교회 2019.11.06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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