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본질과 비 본질

11:37-42

 

(11:37)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11:38)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11: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1:40)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1: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본질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근본적인 성질을 말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하여 예를 들겠습니다.

 

세계 3대 피자 회사로 피자헛, 도미노, 리틀 시저스를 꼽습니다. 이 세 회사는 저마다 독특한 판매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 도미노는 남보다 빠른 배달, 리틀 시저스는 싼 가격을 판매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파파존스라고 하는 회사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읍니다. 30대 젊은 사장 슈네트가 만들었는데, 매출이 매년 배 이상 오르고 있읍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파파존스가 기존 3대 피자 회사를 앞지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것은 파파존스는 피자의 본질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피자의 맛입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최고의 맛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기도, 봉사, 헌금, 축복...

미국의 어떤 이민 교회는 교회당을 짓다가 큰 싸움이 일어나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예배당 카펫을 빨간색으로 할 것인가, 파란색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카펫 색깔은 비본질적 문제입니다. 우리도 이런 비 본질에 목숨 걸 때가 있지 않습니까?

 

1.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왜 이상하다고 여겼는가?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합니다.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어떤 의도로 초대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디나 그렇지만, 유대인들도 식사 교제를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궁금해서 초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초청에 응하셨고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38)

우리생각에도 예수님께서 식사하시기 전에왜 손을 씻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바리새인이 이상하게 여긴 것은 위생적인 문제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손 씻는 것은 그들의 관습을 따라 행하는 정결예식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행하지 않으셨기에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런 정결 예식을 자주 행했습니다. 이방인을 만나는 것과 같이 부정하게 된 사람과 접촉하거나 그들이 만진 것을 만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인 자주 정결 예식을 행했고, 식사 전에도 손을 씻는 것으로 자신들의 거룩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했습니다. 손을 씻는 것은 의식이기 때문에 그냥 씻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식을 하기 전에 손을 씻고 해야 했습니다. 정해진 물을 정해진 양만큼 정해진 방법을 사용해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다른 용도로 먼저 사용된 물을 사용해서도 안 됐기 때문에 큰 단지나 항아리에 예식에 사용하는 물을 따로 보관했습니다. 한 번에 물을 쏟아 손 전체가 구석구석 씻겨야 하고, 손을 씻은 물이 이미 씻긴 곳으로 다시 가면 안 됐기 때문에 손을 쳐들어서 물이 손목 쪽으로 흘러가게 했습니다. 손을 공기 중에서 말려야 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손이 정결하게 되었다고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씻기 전에 기도문을 낭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씻은 다음에도 다시 다른 기도문을 낭송해야 합니다. 손이 음식에 닿기 전에 어떤 물건이나 다른 사람에게 스치기라도 하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합니다. 복잡하죠.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지 않으신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늘 그렇게 해왔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어겼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제사장들이 직무를 행할 때 손발을 씻을 것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식사와 관련해서 모든 사람이 손을 어떻게 씻으라는 명령은 없었습니다.

 

그럼 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예식으로서 손을 씻는 것이, 성경에도 없는 이 의식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에서 만든 하나의 예식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 손발을 씻을 것을 명하셨다면, 우리도 제사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냐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된 일이 하나의 전통이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인식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과 가장 비슷한 사건이 마가복음7장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7:1)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7:2)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7: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7:4)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7:5)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7: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7:14)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7: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7:16)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7: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7: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들의 문제는 그들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만든 외부적인 규정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과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준수하는데 급급하여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게 만든데에 있었읍니다.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율법의 형식만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 라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규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비판하여 민중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받아 들이지 못하도록 조장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해석으로 말미암아 자신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뿐 아니라 백성들도 예수님을 믿지못하게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2. 바리새인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바리새인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께서 그의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11: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들은 왜 그렇게 겉과 속이 다릅니까? 속을 감추려고 겉을 꾸미기 때문입니다. 왜 속을 감추려고 합니까? 속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속이 더럽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언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3:23) 즉 모든 사람의 속이 죄로 인해 더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씻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손길을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속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겉을 꾸밀 생각만 했습니다. 손만 씻을 줄 알았지 속은 씻을 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그런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시는 목적은 그들에게 수치를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겉모양보다도 마음속을 깨끗이 씻으라고 촉구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 행위를 가져오는 마음, 동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정확히 이 반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결 예식이 자신들의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잔의 겉만 깨끗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겉이 깨끗하다고 자동으로 속이 깨끗하게 되지 않습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깨끗해 졌다고 생각했던 혹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시는 분으로서 그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 안에는 악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이런 마음의 죄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40)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십니다. 겉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속도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순종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시작해서 겉으로 이어지는 순종입니다. 이것을 애써 외면했던 바리새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구약에 정통했던 바리새인들은 이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그들이 했던 것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지만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10:2-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도 만드셨고 동시에 속도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겉과 속 모두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44절에서 이런 바리새인들의 모습에 대해 평토장한 무덤과 같다 라고 더욱 신랄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자신의 내면의 악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거룩한 척 행동하는 것이나 앞에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미워하고 험담하는 것도 그에 해당하겠지요?

그들은 없는 정결법을 만들어 지키면서도 진실되고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들의 죄목은 불합리였읍니다. 물로 손은 씻었으나 악한 행동이 나오게 만드는 마음은 씻지 않았읍니다. 그들속에는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탐욕과 선한 사람에 대한 악독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집사람을 도와 설거지를 합니다. 그릇을 씻을 때 물론 그릇의 바깥쪽도 씻읍니다만 그릇의 안쪽을 깨끗이 씻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을 담았던 곳은 그릇의 안쪽이고 음식을 담을 곳도 그릇의 안쪽이기에 안쪽을 깨끗이 씻습니다. 흐르는 물로서 씻지만 때로는 물비누로도 씻습니다. 그릇의 속은 마음상태와 같읍니다. 우리가 만일 마음을 씻지않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예배를 더렵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치 잔의 겉의 먼지는 씼었으나 속에는 거미집이 있는 잔을 주인에게 드리는 것과 같읍니다. 마음을 정결하게 하지 않을 경우 육체의 정결함은 의미가 없읍니다. 마음안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가운데 인간이 만든 의식 규정들에 순종하는 것은 가치가 없읍니다.

마음은 불결하면서도 몸을 씻는 것은 더러운 대접의 겉을 씻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었읍니다. 예수님은 몸보다도 영혼에 더욱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3.어떻게 하면 속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11: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1) 구제하라

그런데 갑자기 구제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좀 신기합니다. 아마 그 바리새인이 이웃에 대해 매우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나 보죠?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속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경건과 거룩'에 대한 생각을 좀 넓혀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적인 수신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릇과 손, 그리고 속과 삶까지 모두 깨끗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6:12-15에 보시면 3년에 한번씩 드리는 십일조를 통하여 토지소산의 일정한 양은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구제를 안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열심히 구제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음으로 먼저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겉과 속을 모두 지으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결한 것은 그 마음에서 시작하여 행동으로 옮겨지는 구제입니다. 생색내듯이 종교적인 의무감에서 행해지는 구제, 그러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하는 것인 양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든 가장 싫어하시는 위선이고 외식입니다.

 

이 세상에는 위선자가 많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탈을 썻기에 위선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위선의 비늘을 벗어야 합니다. 가식과 외식의 비닐을 벗고 진실한 자기로 서야합니다. 어떻게 외식이라는 인간의 위선과 가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식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책망했습니다.

외식은 속마음과 겉을 다르게 꾸민 거짓의 죄입니다. 외식은 위선입니다. 겉으로만 착한 체 하는 위선자입니다. 외식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같이 꾸민 허위의 죄입니다. 외식, 위선, 가식은 거짓의 죄이기 때문에 벗어나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오전 9, 정오, 오후 3시 등 세 차례씩 회당에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외출 중에는 길에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합니다. 겉은 치장을 해서 말짱합니다. 그러나 속은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합니다. 겉을 치장하여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 없지만 자기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조금 인기가 없어도 좋아요. 거짓으로 나를 치장하기보다는 진실한 내가 더 소중하지 않나요?

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겉으로 꾸민 사실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아시며 우리의 거짓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동기를 아시며 내 본심을 아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는 속일 것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외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진실만이 통합니다. 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을 때 우리는 외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시고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평토장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안을 보십니다.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보십니다. 이 안을 보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외식과 위선과 가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격탐사기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시광선, 적외선, 마이크로파에 의한 사진 촬영 등에 의하여 원격 대상물의 정보를 수집하여 해석하고 거기 필요한 정보를 읽어 내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레이더와 같은 별도의 파장 영역을 사용하여 지하의 사물이나 인간의 눈으로 본 것과는 다른 실물의 정확한 실체를 밝히는 기술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지난달 한국으로 귀국하신 송집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오산에서 비행기를 띄워 북한전역을 감찰하는데 그 사진기술은 구름이 끼여 있어도 밤이어도 상관없이 북한 전역을 샅샅이 살펴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드럼정찰기나 원격탐사기술보다 더 정확하십니다. 정확하게 인간의 속을 꽤뚫어보시고 그 동기를 추적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는 위선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환하게 살피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보다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설 때 우리는 외식의 비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짓의 비늘을 계속 벗겨야 합니다. 외식은 진실한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짓의 탈을 계속 벗고 진실의 옷을 계속 입는 것입니다.

거짓의 옷을 벗고 진실의 옷을 입기 위해서 우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진실의 옷을 입는 훈련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의지와 결단 즉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계속 벗어보십시오. 나에게는 남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내 놓을 업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습니까?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다 드러내어 놓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혀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곧 바로 진실이라는 옷을 입혀주십니다. 외식의 탈을 벗어버리는 순간, 주님은 우리에게 곧 바로 거룩한 옷을 입혀주십니다. 가식과 위선이라는 외투를 벗어 던지는 순간,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외식이 이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추하게 보이십니까? 그러면 됐습니다. 당신도 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의 가식과 위선이 부담스럽게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이제부터 진실이라는 새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외식과 위선과 가식을 벗어버리는 순간 잠시 동안은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버림받음의 쓰라린 고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한 자기를 찾은 것입니다.

 

저는 목자들의 모임에서 자신의 약점과 답답한 사정을 알려 드리고 기도부탁을 드립니다.

어쩌면 교인들은 목사는 흠도 없고 약점도 없는 완전한 인간이기를 바라시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지도자인 저부터 그렇게 할때에 목자들도 그들의 속 마음을 드러내 보일 수가 있고 그렇게 서로의 속 마음을 드러내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깊은 교제를 갖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왜 진실해야 합니까? 진실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는 진정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내 속에서는 나를 발견한 기쁨이 있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축복이 있습니다. 마음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관심가지고 해야 할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2 2020.4.12. 부활주일 설교 요약 맨하탄한인교회 2020.04.13 38
61 2020.3.22. 때를 따라 아름답게하시는 하나님 맨하탄한인교회 2020.03.23 68
60 Mar, 22. 2020. Sermon Script. 맨하탄한인교회 2020.03.23 202
59 2020.3.15.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맨하탄한인교회 2020.03.18 36
58 2020.3.1.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맨하탄한인교회 2020.03.05 36
57 2020.2.23.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 맨하탄한인교회 2020.02.26 85
56 2020.2.16. 우리가 사랑받지 못할 때 jay 2020.02.19 114
55 2020.2.9. 은혜로 받은 구원 그리고 행함으로 받는 축복 맨하탄한인교회 2020.02.13 57
54 2020.2.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 맨하탄한인교회 2020.02.02 77
53 2020.1.26. 순종연습 맨하탄한인교회 2020.01.29 47
52 2020.1.19. 복 있는 사람 맨하탄한인교회 2020.01.23 45
51 2020.1.12. 세례 요한을 죽인 자들 맨하탄한인교회 2020.01.14 125
50 2020.1.5. 꿈을 갖고 사는 사람 맨하탄한인교회 2020.01.08 48
49 2019.12.29. 다윗의 버킷리스트 맨하탄한인교회 2019.12.31 54
48 2019.12.22.동방박사들의 경배 맨하탄한인교회 2019.12.24 120
47 2019.12.15. 두 가지 구원 맨하탄한인교회 2019.12.18 21
46 2019.12.8. 유윤철 목자님 설교 요약 맨하탄한인교회 2019.12.09 29
45 2019.12.1. 기도의 진정성 맨하탄한인교회 2019.12.04 37
44 2019.11.24. 감사습관 맨하탄한인교회 2019.11.27 43
43 2019.11.17. 없으며 없을지라도 맨하탄한인교회 2019.11.20 44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Nex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