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소중히 여겨라

 

 

(27:10)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아프리카의 속담중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짐승들도 많고, 길이 험해서 혼자 다니기는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서로 경계를 같이 서기도 하고, 먹고 생활하는 인프라가 힘들어서 같이 잠자리도 만들어야 되고, 음식도 구하기 어려워 사냥도 같이 해야 되고, 밤에 잘 때도 서로 보초를 서 주어야 잠을 잘 수 있기에 함께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속담은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속담입니다.

 

혼자하면 남 간섭 안 받고, 잘 될 것 같아도 하다보면 지치게 되고 또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벌어도 혼자서 다 차지하기 때문에 좋을 것 같지만, 무리하다보면 결국 지치고 병들게 되고 고생하며 돈벌어 놓은 것이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되고 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섞이지 않고, 혼자만 믿음 생활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혼자서 자기 관리를 아주 잘하면서 남과 섞이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은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이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27:10)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잠언기자는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친구라도 다툰다든지 실망할 일이 있으면 단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지말고 잘 사귀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친구와 진짜 친구]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그냥 친구는 당신이 우는 걸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이미 (그의) 어깨가 당신의 눈물로 적셔져있지요. 그냥 친구는 당신 부모님의 성함(이름)을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당신 부모님의 전화번호까지 알고있지요. 그냥 친구는 당신이 파티를 열 때 과일 한 바구니 사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당신이 파티를 열 때, 먼저 와서 준비를 도와주고,

파티가 끝나면 치우는 거 도와주느라 가장 늦게 돌아가지요.

그냥 친구는 당신이 밤늦게 잠들어 있을 때 전화하면 싫어하면서 짜증을 냅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짜증은커녕, 무슨 일이 있느냐 걱정하지요. 그냥친구는 당신과 실랑이를 벌였을 때, 이제 우정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나중에 전화를 해서 (당신에게) 먼저 사과를 하지요. 그냥 친구는 항상 상대방이 자신 옆에 있어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자신이 그 친구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지요. 그냥 친구는 당신에 대한 소문을 믿습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당신을 믿어줍니다.

 

고 함석헌 선생의 글 "그대는 가졌는가 ?"를 소개합니다.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여러분은 이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27:10)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여러분에게 이런 이웃이 있습니까?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이웃,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더라도 흉보지 않을 이웃,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이웃,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문제삼지 않는 이웃.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 때로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이 평온해지면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나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이웃. 비록 많은 사람은 아닌 한두 사람에 불과하더라도 일생에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지속될 이런 이웃이 있으십니까?

만약 이런 이웃이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이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까?

둘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개인의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그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다르게 설명했습니다.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몸의 각 부분으로 부름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과 연합관계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바울은 몸이라고 했습니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기능을 통해서 머리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상대방을 돕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지체들이 서로 유기적인 연합과 나눔이 없으면 우리는 짤라져나온 몸의 한 부분과 같이 결국 비정상적인 신자가 되거나 죽게되고 예수님은 몸의 한 부분이 없는 불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동료 그리스도인과 연합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 연합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교제입니다. 이 관계를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한 멤버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끼리의 교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8:20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

(133:1)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우리는 신앙고백을 할 때 마다 성도의 교제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함께 모일 때 교인은 예배보고 돌아가는 관중이 되어져 버리고 그리고는 상대방과 교제를 끊고 개인 시간을 보내며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선되어져야 합니다. 깨어진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교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바람직한 올바른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내가 가까이 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1)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족을 버리거나 무시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가족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 것이죠. 34-3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영적인 가족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입니다. 이 장면을 다시 한 번 눈으로 그려봅시다. 33절에 예수님께서 물어보셨어요. “누가 나의 어머니이고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그런 다음 34절에 자기 주변에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둘 찬찬히 주목하여 보고 계신 것이죠. 그리고 지금 집중하여 자신을 보고 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너희가 바로 내 가족이다!’하고 선포하신 것이죠.

 

한 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그 자리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까요?

물론 제자들도 있었겠지만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낙오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우울증 걸린 사람, 암 환자, 인생을 포기 해서 자살 시도 했던 사람, 가족에게 버림 받은 사람,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록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낙오된 자에 불과할지라도 영적인 관점에서는 참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요 예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 , 인류 그 누구도 이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 판정을 받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겉과 속이 다른 우리 마음을 훤히 보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검은 죄악과 미움과 시기 욕망과 정욕을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 중 누가 감히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몸부림을 칠 때에 주님은 우리를 그의 가족으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2)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가 내 이웃입니다.

 

10:25이후에 보시면 어떤 율법 전문가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는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되물으십니다. “자네 생각에는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은가?” 그랬더니 이 사람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십니다.“네 말이 맞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예수님의 칭찬을 받자 이 사람은 다시 질문을 합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누가복음 10:30)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많은 상인들이 그곳에 가서 양이나 소를 팔고 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리고방향으로 내려올때가 많습니다. 여리고로 가기 위해서는 유대광야라는 아주 황폐한 곳을 지나가야 합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바로 이 유대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 사람이 이 광야길을 지나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이 사람을 두드려 팼습니다. 그리고 그가 갖고 있는 재물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 생존권과도 같았던 겉옷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벌거벗긴 채로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이 사람에게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였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등장합니다. ‘수수방관 형입니다. 그들은 사회적, 종교적으로 존경받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생명의 자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받을 때, 그들은 외면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개와 돼지처럼 천대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앞서 지나갔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상종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무엇이 달랐습니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갖고 있는 불쌍함과 위기, 그리고 그 아픔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누가복음 10:33~34)

 

사마리아 사람오히려 고통 받는 자를 보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와 소외된 자, 그리고 죄 지은 자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생명의 사건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에 우리가 지금 이만큼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사건, 치유의 사건, 회복의 사건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어지는 동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가까이) 갔다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었다’, ‘(상처를) 싸맸다’, ‘(자기 짐승에) 태웠다로 이어집니다.

그는 자기가 타고 있던 나귀에서 내려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그 나귀에 태워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질문하셨습니다. 너의 생각에는 이 세 사람중에 주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하시니라.

 

현대인들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 옆에 없다고, 외롭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왕따가 되었다고, 물질세계에서도 정신세계에도 영적인 세계에서도 외톨이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주변에는 우리가 도와야 할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그리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한국 인천에 가시면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돈을 받지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름은 국수집이지만 무료로 밥을 대접합니다. 이곳에는 계산하는 카운터도, 종업원이나 가격표도 없읍니다. 모두가 각자가 원하는 만큼, 자율적으로 음식을 가져다가 먹을 수 있게끔 뷔페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일주일중 목 금을 빼고 매일 식당문을 열고 하루 평균 300~400명 정도의 노숙인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갑니다.

 

이 식당 주인은 서영남씨라는 분입니다. 서 씨는 25년간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사생활을 하다가 좀 더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정들었던 수도원을 떠나 우연히 동인천역 근처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 주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때 그의 마음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시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길에서 음식을 나눠 줄 수 있을까하고 큰 감동을 받았죠. 그리고 그는 지난 2003년부터 노숙인 및 배고파하는 많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국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에 운영하기 시작했읍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노숙자나 인근 쪽방촌 주민들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노숙이란 것이 팍팍한 경쟁사회에서 이겨낼려고 하다보니 생겨난 것이지, 그들이 게으르다거나 가난해져서 노숙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에게 어떤 직장을 먼저 찾아주기 보다 잃어버렸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찾고, 새로운 가족을 가질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삶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되서 국수집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을 구분해서 봉사를 하게 된다면 그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봉사 역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계산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돌봐주고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봉사라고 생각해요. 남을 돕는 데 이유는 없는 겁니다. 이웃들이 더불어 함께 도우고, 함께 웃고, 즐기는 등 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저에게는 행복입니다.”

 

서 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하루에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사람들은 수백명이지만, 그는 가끔은 손님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술 좀 그만 먹어야 되지 않겠어라며 건강을 챙기는 말도 잊지 않습니다.

 

이 민들레국수집에는 자원봉사자 10여명이 함께 서 씨의 일을 돕고 있어 언제나 민들레국수집은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라고 했읍니다.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누구나 봉사를 할 수 있고 후원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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