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을 때(14:32-42)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바로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민하여 죽게 되셨읍니다만 그것을 극복하셨고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극복하셨으며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까지 가실 동안에는 찬양도 하시고 분위기가 어둡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 서시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달라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하시고 자기는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전에 네가 나를 세 번부인하리라말씀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렀습니다.

 

8명의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세 제자만 데리고 겟세마네동산 깊숙이 들어가실 때 주님이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찼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슬픔 때문에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에 관해 크게 두 가지 전통적인 해석이 있읍니다.

 

첫째이유는 십자가 처형은 인간이 고안해 낸 사형 방법 중에 최고로 심한 고통이 따르기에 주님도 인간이신지라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의 고통이 가장 극심한 이유는 반대로 금방 죽지 않고 며칠에 걸쳐 서서히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을 세차례 예고하셨습니다. 아무리 십자가 죽음의 고통이 심해도 자신의 부활을 잘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십자가 형이 두려워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설명에 무리가 있습니다.

 

둘째 해석은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이 스스로 죄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만 하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21:23)고 선포했습니다. 나무 십자가에 달릴 예수님은 율법에 규정된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당신의 몸으로 감당해야 했읍니다.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삼일 간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와 소통은 완전히 단절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철저히 외면당하여 당신 혼자만 완전히 고립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가 저절로 튀어나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으로선 이 단절이야말로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셨을 때 주님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 주기를 요청하셨습니다.

 

(14: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은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셨을 때 제자들이 깨어 있어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이웃이 고통으로 힘들어 할 때 우리의 할 일을 가르쳐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즉 이웃의 고난에 동참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 12:15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울고 있을 때 누군가 함께 해준다면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큰 치료제는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주는 것입니다. 슬픔을 당하면 외롭고 서럽습니다.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함께 해주지 못할 때 그것이 그 고통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누군가가 함께 해준다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통이 완화됩니다. 슬픔이 한 개인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연결될 때 슬픔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홀로 슬픔의 짐을 지고 갈 때입니다. 그래서 홀로 슬픔을 견디다가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슬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이 불행한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통이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고통은 수많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통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가볍게 접근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위로하려고 갔다가 마땅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괜히 어설프게 한마디를 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장례식에 가서도 말하지 않고 가만히 함께 있어주면 됩니다. 우는 자를 위로하려고 하면 진지함이 필요합니다. 욥기서에서 욥이 깊은 고통 속에 있을 때 누군가 진정한 위로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도리어 큰 상처를 줍니다. 물론 욥의 친구들도 욥을 위해서 한 말이겠읍니다만 죄가 있으니 회개하라고 다그친 것은 욥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욥을 더 외롭고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래서 욥기서에서 주는 교훈은 함부로 남의 고통을 다 아는 것처럼 접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울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슬픔의 바다입니다. 누구나 한 곳을 건드리면 눈물샘이 펑 터지는 곳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불쌍합니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고통이 많아서 슬픈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적어서 슬픔이 큰 것입니다. 세상이 따뜻해지려면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대단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해주는 것, 그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위로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죽고 싶은 사람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 위로입니다. 힘들어 죽고 싶어도 나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는 자와 함게 울라고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따뜻한 마음의 회복입니다. 우리 교회가 함께 울고 웃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 때 슬픔은 반이 되는 은혜가 우리 삶에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주님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교회 안에서 솔직하게 드러내고 숨기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힘들 때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나도 기꺼이 도움을 받고 다른 사람이 힘들 때 나도 기꺼이 그 고통 가운데 들어가는 상호 교류가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든지 감정을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갖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내 감정을 쉽게 표현했다가 오히려 그 비밀이 새어나가 내가 또다른 상처를 입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결국 우울증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감정을 표현해야 합니다. 서로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한 삶을 살려면 이웃과의 관계를 열어,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언제든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축복입니다.

 

우리는 힘들 때 홀로 있지 말고 그것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고통 받을 때 무관심하지 않고 다가가는 태도가 관계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목장은 외로움에 찌들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치료제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우는 자들과 함께 하여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동참이 해결해 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경청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시편을 보면 시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표현했읍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정을 숨기기도 합니다. 자기가 가진 분노와 서운함과 원망을 표현하지 않지만 사실 그 속에는 감정이 억눌려 있는 것입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자기감정을 표현하면서 욕도 했습니다. 저주도 했습니다. 그것이 주는 교훈은 자기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감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될 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그 마음을 틀어 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가셨습니다.

 

(14: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14: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찬송하면서 예루살렘 성전 맞은 편에 있는 감람산 중턱 아래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병들에게 체포되셔서 재판을 받으시고 모진 고문과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예수님은 차마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나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갑니다.

경제적인 짐이 있습니다. 가족의 짐이 있습니다. 자녀의 짐이 있습니다. 질병의 짐이 있습니다. 직업이나 책임자로서의 짐이 있습니다. 장래의 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거운 죄 짐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수많은 짐들을 안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때로 이 짐이 너무 버거워서 더는 못 견디겠다고 하소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담당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5:7절에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55:22절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께서 당하실 수 있는 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십자가의 고난이 괴로웠으면 예수님은 가능하면 십자가의 고통을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무거운 십자가를 아버지 하나님께 의탁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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