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3:1-4,10)

 

우리는 그동안 니느웨성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요나의 행적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먼저 그 니느웨성에 대해서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니느웨성>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여러 가지 자료와 연구한 글들을 보면 니느웨는 대단한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성벽 높이가 90피트 정도였습니다. , 우리 예배당 높이의 3배 가까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있는 성입니다. 그 성벽의 두께가 전차 세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성입니다. 경비병들이 파수를 보도록 성곽에 둘러가면서 세워 놓은 탑이 1500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니느웨 성은 성곽 안에 있는 도시와 성곽 밖에 있는 도시를 합해서 네 지역으로 형성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지역이 60마일 정도 크기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종일 걸으면 한 20마일을 걷는다고 하는데 성경에도 삼일 길이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들만 12만명이니까 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인구가 거의 줄잡아 100만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2800년 전에 이런 규모였다면 얼마나 대단한 성이었습니까?

 

<요나의 행색>

그런데 여기에 초라한 요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 동안 있다가 나왔기 때문에 소화액에 의해 피부가 상해 얼굴도 빨갛고 머리털도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된 남자, 정말 쳐다보면 웃음부터 먼저 나올 정도의 몰골을 한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그 성에 들어가서 이길 저길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진다고 외치고 다녔다는 말입니다.

 

<말씀선포의 결과>

그런데 요나가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자 엄청난 일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5절부터 6절까지 나와 있지 않습니까?

니느웨 백성이 첫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5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요나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분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 말씀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무론 남녀대소 하고 모든 사람들이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이러자 소문이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왕이 당장 그 왕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땅바닥에 내려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 짐승까지도 금식시켜라 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니 무엇을 하라고 명령했습니까?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이 말은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잘못한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입으로만 회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지어다.' 나쁜 짓을 전부 다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말만으로 회개할 것이 아니고 실제 행동으로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목숨걸고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한 요나의 순종이 있었읍니다.

<사명을 깨달은 요나>

처음 하나님이 요나를 불러서 니느웨로 가라 하셨을때 요나가 순종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물고기 배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습니까? 이제 겨우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또 부르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 실망을 안겨준 사람을 구차하게 왜 또 찾으십니까? 하나님에게 사람이 없습니까? 얼마든지 부를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유대 나라에 가면 요나가 아니라도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이 요나를 찾아서 또 일을 시키는 것입니까? 그것이 요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다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다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환상 중에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6:8)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때 이사야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십시오.(6:8) 하나님이 오냐, 알았다. 내가 너를 보내마. 이렇게 해서 그 위대한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닙니까?

오늘도 우리를 보시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어야 됩니다.

 

<사람을 살리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명, 세상에 영원히 망할 사람을 영원히 살게 만드는 것만큼 보람있고 해볼만하고 복음을 위하여 돈을 투자하든 시간을 투자하든 젊음을 투자하든지 투자해볼 만한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이 복음 전하라는 소명이 너무나 소중해서 천사들이 보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깨달은 분들은 주님을 위해 충성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부엌 싱크대 위의 소금이 어떻게 해야 그 기능을 발휘합니까? 조리하는 음식에 집어 넣어야 짠 맛을 발휘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복음도 내가 전해야만이 생명을 구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성경 말씀 속에 담아두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내가 그냥 배우고 머리에 담고만 있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전해야 합니다. 전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2절에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하라. 전파하기만 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돌이키시는 하나님>

 

3장 본문의 핵심 단어는 돌이킴입니다. 요나의 성의 없는 선포만으로도 니느웨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자 하나님도 뜻을 돌이켜 재앙을 철회하셨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그 불변할 것 같은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신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쩌면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습은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섭게 진노하시고 매를 드시는 하나님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 하나님의 진짜 진면목은 뜻밖에도 뜻을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듣고>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읍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 금송아지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 하고 먹고 마시며 뛰놀게 될 때(32:6),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10)고 하였읍니다.

이때 진멸의 위기 앞에서 모세가 출 32:12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하며 중보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티끌같이 사라질 위기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모세가 하나님의 용서와 진노의 풀어짐을 위해 중보할 때, 32:14에서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여기서 한 사람 모세의 중보기도 앞에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 이는 뜻밖의 모습이십니다. 진노와 심판의 얼굴에서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넘치시는 얼굴로 부각이 됩니다.

 

하나님은 유약하신 분이 아닙니다. 어차피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인데 그 정해놓은 죽음을 바꾸지 않아도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10년 후에 죽느냐, 20년까지 살게 하느냐 하는 것은 당사자의 기도와 눈물에 의해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변덕쟁이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전도를 듣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 성읍을 하루 종일 다니며 외친 메시지는 40일이 지나면 이 성읍이 무너진다는 심판의 메시지였읍니다. 그런데 그 니느웨는 무너지지 않았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기 때문입니다.

3:10을 보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회개란 중보기도와 개인이 드리는 눈물의 기도만큼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죄악의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인데 내가 돌이키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심을 알 수 있읍니다. 사실 하나님은 내가 한걸음 돌아서서 다가가면 먼저 10걸음 앞당겨 돌아서 오시는 분이십니다.

 

< 예레미야가 전한 돌이키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18:7-10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처음의 생각을 바꾸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어떤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내리기로 생각했던 재앙을 돌이킬 것이며, 어떤 민족이 하나님 보기에 악을 행하면 내리기로 생각했던 복을 거두리라고 말입니다.

 

<유대인의들의 오해>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무조건 자신들을 지켜주신다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의 미래는 결정된 게 아닙니다. 유대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운명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가리켜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개념이 훼손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채 하나님이 자기 뜻을 얼마든지 바꾸신다고 표현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니느웨 백성들처럼 악에서 돌이킴으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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