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신바 된 아들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아가야 합니다..

잠언 17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부부 싸움할 때 나오는 입김애서는 독성 물질이 나오지만 즐겁게 웃고 난 사람의 뇌에서는 독성을 중화시키는 좋은 호르몬이 다량으로 분비된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 마음에 매일같이 독이 쌓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독, 근심과 걱정의 독, 온갖 스트레스의 독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 쌓여서 여러 가지 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웃으면 독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며 기뻐해야 할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어 문법에는 결과동사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 예언적 사건인데 마치 이미 일어난 사건처럼 과거 시제로 쓰는 겁니다. 본문은 예수님 탄생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성탄을 예언한 대목인데,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는 것이 전형적인 결과동사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그것이 미래적 사건임에도 과거완료형 동사로 씁니까? 비록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지만 이미 일어난 사건이나 진배없다고 확신할 때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과연 예언 그대로 주님이 700년 뒤에 성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첫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올해도 겨울이 찾아 왔습니다. 날은 차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추리 등으로 주님의 오심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에게 큰 복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만약 신실하지 않다면 우리는 불안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가 내일은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을 의지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한 없이 크신 분이십니다.

89: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한 없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편안하게 그 분을 의지하고 그 사랑에 기댈 수 있읍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한번 말씀하신 것을 잊지도 않으시고 취소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쁘게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1:1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난 후,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에게 장막에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라가 장막 문 안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웃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어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라는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속으로 웃는 것까지 꿰뚫어보신다는 것을 알고, 사라는 하나님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라와 하나님께서 말다툼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장막 문 뒤에서 속으로 웃은 것을 가지고 계속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묻어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아들을 약속했으니, 너는 기뻐하고 웃으며,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사라는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사라의 웃음은,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라의 웃음과는 다릅니다. 사라는 진심으로 웃었습니다.

사라는 아들의 이름을 웃음이라고 짓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말씀하실 때,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정으로 웃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사라가 진정으로 웃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웃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이후에야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웃기 전에 이미 사라를 웃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웃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웃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때문에 기뻐하고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웃게 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웃게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패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고백하고,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해야 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우리가 웃을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오실 주님을 모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사라는 말의 뜻은 상담자라는 말입니다. 영어성경은 counselor라고 번역했습니다.

주님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상담자십니다. 어떤 고민도 주님이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이제 현대인들에게 우리는 나의 고민을, 아픔을, 함께 나누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밤을 새서 내 고민의 소리를 들어주고 나를 이해해 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담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고민은 더 많아지고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진정한 상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눈물 흘려 줄 수 있는 진정한 상담가, 진정한 친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느 날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곧 나의 친구라”(15:13-14) 그분은 우리의 상담자, 아니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실 수 있고, 공감하실 수 있고, 나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포하고 있어요.

4: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신다는 이야기이고, 우리의 눈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독과 아픔과 불안과 절망을 아신다는 것, 그래서 이 상담자가 되신 주님이 우리 곁에 오셔서 함께 그 고통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세 번째 이유는 오실 주님을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밤에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노래하며 외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너무 유명한 말씀이지요.

그런데 정말 예수님이 오시고 세상에 평화가 왔을까요?아니요, 오늘날에도 전쟁과 기근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절망과 낙담의 세상 한복판에서 아직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주님을 모시면 이 세상이 아무리 소란스럽고, 불안해도 평화의 왕을 모신 자의 심령은 평안합니다.

 

마지막 우리가 웃을 수 있는 네 번째 이유는 이러한 은혜는 낮은 자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을 사람들을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쓸모 없는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멸시 받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700년 후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지 않으시고,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반응에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사모했습니다. 갈급했습니다. 그 결과 갈릴리 백성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갈릴리는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께서 평생 활동하신 무대였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영광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은혜를 누리게 했습니까?

갈릴리 인은 고난과 아픔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갈급했고, 굶주린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뭔가에 항상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치유가 필요했고,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겸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갈릴리 인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낮아짐이 필요합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겸손함과 낮아짐, 갈릴리인의 마음, 그리고 메시야의 오심을 대망하는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오신 계절, 대강절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는 주의 자녀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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