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할 일

(18:1-8 )

 

여러분 간혹 식당이나 영화관에 갔다가 물건이나 가방을 두고 올때가 있지요?

"혹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줍지 못하셨나요? 틀림없이 엊저녁에 그 극장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왔읍니다.

"아니요.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잠깐만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지배인은 이 말을 남기고 목걸이를 찾기위해 어디론가 갔습니다.

얼마 뒤, 지배인이 돌아와 수화기를 들었읍니다. "부인, 기뻐하세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 여인은 지배인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으러 간 사이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는 전화번호가 남지않던 시기라 극장 지배인이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를 추적하려고 백방으로 애써 보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이사야서 30:18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로 묘사된 세상 끝날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에 바빠 인생의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노아와 롯을 제외한 사람들은 다 망하고 말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에 실패하지않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항상 기도하려면 원한과 같은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절박한 심정을 가질려면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한 자이고 세상은 내힘으로 감당 할 수 없는 험한 세상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비유에서 그러한 사람으로 한 과부를 예로 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는 철저히 남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52어 기적에서 볼 수 있는 대로 5천명이 먹었지만 그 5천이란 숫자속에는 여자와 아이들은 카운트가 안될 정도로 여성은 외면받던 시대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사회는 사회적 약자들인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 가난한 여인들, 부정한 자들에게 냉혹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과부는 가장 소외된 계층의 사람에 속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어로 과부는 "침묵하는 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남편이 죽은 여인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자립이 불가능해서 특별하게 법적 보호가 필요했던 여인을 통틀어 지칭하던 말이었습니다. 특히 과부가 가난한 경우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부가 만난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라는 서술은 그가 자신이 행하는 불의한 행위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혀 걱정하지 않고 산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이란 표현은 원래 "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이런 뜻입니다. 그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수치심을 주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점을 나타내지요.

그는 과부의 소송을 접수하지 않고 늦장을 부립니다. 아마도 재판관은 과부의 소송이 자신이 보기에는 금액상 하찮은 것이거나 또는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그녀를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과부가 소송을 낸 상대가 상당한 권력이나 부를 지닌 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재판관이 과부의 소송을 해결해 주지 않은 기간이 얼마나 긴 기간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잖게 긴 기간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답답한 상황 가운데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과부와 같은 처지임을 알뿐아니라 상대적으로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보호를 약속하셨읍니다.

(22:22)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2:23)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2: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68:5)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이 믿음은 가진 사람은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약해도 아줌마는 강하고, 아줌마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바로 과부입니다. 어차피 산전수전 다 겪고 잃을 것이 없는 그녀가 두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재판관을 찾아가 그를 졸랐습니다. 그러자 그 불의한 재판관은 그 과부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나 봅니다. 결국 그 거만한 재판관은 다음과 같은 독백을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18:4~5)

과부의 권리에는 관심이 없던 재판관도 자기 자신의 안위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번거로운 것은 싫었던 것입니다. 옳지 않은 재판관은 옳지 않은 이유로 옳은 일을 합니다(5). 그녀가 계속 자기를 귀찮게 할 것이 싫어서 그녀의 권리를 찾아 준 것입니다. 재판관의 독백 다음에 나오는 6절부터 8절까지는 이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18: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귀담아) 들으라

(18:7)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권리를 찾아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18: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보겠느냐 하시니라

(18:6~8)

 

하나님께서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개정판)"권리를 찾아 주실 것"으로, 공동번역(개정판)"올바르게 판결"로 번역하였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첫째 과부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끈질기게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응답과 재림의 날을 주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응답의 시기를 8절에서 '속히(혹은 얼른)'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속히 라는 표현은 인간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시간개념은 1000년을 하루로 보신다는 것을 아시지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전 3:8)

그러므로 우리입장에서는 무한히 긴 시간도 하나님입장에서는 짧은 하루같은 시간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입장에서 조급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대에 성취될 것을 맡기고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8절의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에서 '믿음'은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다시오실 주님의 재림의 약속을 믿고 흔들림 없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에 대한 기도 응답이 늦어진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기도가 별 소용이 없나 보다!"라고 느끼며 좌절하기 쉽지요. 그러나 이는 사실 "하나님의 때"에 대한 신뢰가 모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기는 그저 "내 때"일 뿐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문제가 해결돼야 좋은 것입니다. 때로 응답이 늦는 것은 오히려 절대 물러서지 않는 강한 믿음, 끈질긴 믿음을 키우시는 하나님의 교육 방법일 수 있습니다.

 

교회사에서 보면 성도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했고 불공평하고 불공평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는 고통과 불의 속에 사는 성도들이 원하는 것처럼 쉽게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성도들이 기도해도 세상의 악은 바로 제거되지 않습니다. 악이 제거되면 또 다른 악이 성도를 괴롭히지요. 본문은 그것이 왜 그런지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북한에서 핍박받는 지하 교회 성도들은 밤낮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왜 속히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우리 심정으로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속히 해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본문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답입니다.

기도는 내 의무요 영역이고, 응답은 하나님 의무이자 영역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진실하고 간절하게 구하는 것일뿐, 응답에 관한 모든 영역은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셋째는 주님의 재림이 주님의 주권에 속한 부분이라면 왜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의 할 일은 주님 재림때까지 낙심하지않고 항상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이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이런 강한 믿음은 기도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본문의 과부와 같이 끊임없이 물러나지 않고 간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또한 기도하면 주님이 가까이 오시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고난의 시기를 견뎌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반복적인 기도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한번 기도했으면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요. 그러나 그런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본문의 과부를 보세요. 계속 반복해서 같은 사건으로 재판관을 찾아갔잖아요. 우리가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지속시키기 위합니다.

 

아무리 상황이 불리해 보여도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 응답을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응답이 언제가 될지 상관없습니다. 그는 믿음 안에서 응답될 것을 확실하게 알지만, 그 응답의 시점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조바심을 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낙심하지 않겠지요. 이런 믿음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사람들은 기도가 빨리 응답되었을 때는 기뻐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크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의심하지요. 이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도 빨리 응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대로 구했어도 늦게 응답되는 경우란 부지기수입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못마땅해 하시거나 그분의 사랑과 관심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랍니다. 응답이 늦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기도를 통해서 그의 믿음은 더 강해지고 그의 믿음은 더 자라날 뿐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원하시는 삶입니다. 왜냐고요? 간절한 소망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응답 여부를 떠나 기도하면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내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이미 내 기도의 응답을 넘어선 더 큰 축복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럴러면 자신이 과부와 같은 처지임을 기억하고 거룩한 원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공의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을 믿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응답의 시기와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 고난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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