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으로 나아가는 길

 

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우리는 지난주일 남유다가 멸망의 위기에 있을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살길을 제시하신 것이 안식일을 지켜라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말씀의 의미는 나의 생존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것이고 또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생존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려고 합니까? 그러면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 성수의 말씀을 주시면서 권하신 말씀은 엿새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맞습니다. 우리가 주일날 쉬려면 6일동안 나의 일들을 잘 마쳐 놓아야 쉴수가 있 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엿새동안 일할 때에 힘써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힘써 일하라고 하셨을까요?

 

첫째로 그것은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가능하면 일을 안할려고 할까요? 그것은 유교영향으로 우리는 일하지 않는 자를 복있는 자로 여기고 일하는 자를 천박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7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 사역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움직이고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전에는 30세까지 목수일을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공생애 동안에도 주님은 어떤 때는 너무 많은 사역을 감당하셨기 때문에 식사를 할 겨를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일하라고 권면합니다. 로마서12"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25장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고전 15: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엿새동안 힘써 일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를 배격합니다. 우리가 실직하여 일자리를 잃고나면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을 통하여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일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간혹 교우들이 텃밭에서 가른 채소들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저분들은 저렇게 텃밭에서 일할까?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공터를 놀리면 잡초밖에 안나지만 그 공터에 무언가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면 채소가 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러누워 놀고 있으면서 복을 달라고 하면 주실 수 없지만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게 되면 그 일을 통하여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엿새동안 힘써 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힘써 일하라고 하셨습니까?

 

둘째로 일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존의 수단으로 일을 합니다. 길을 가는 사람 소매를 붙잡고 왜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10명중 8명은 본벌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일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다보니 일이 고통이 될수 있습니다. 노동이 노예적 삶이 됩니다. 우리가 단순히 돈을 벌어먹고 사는 것에만 매달린다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먹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는 일 속에 기쁨이 있을 수 없고 최선의 삶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돈을 버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면 그 안에서 안식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일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한 동물이 아닙니다. 일에만 매여 살면 결국은 인생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일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소명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 일로 부르셨다는 사명이 됩니다. 25장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금달란트들을 주면서 장사하여 이를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맡은 일은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른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일을 통하여 그것이 어떤 직업이든지 그 일을 통하여 신성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때에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통하여서 이웃을 사랑하고 또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3:23)”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이 오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면 그 일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든지 직장에서 상사로 있든지 생산직에 있든지 식당을 하든지 하나님이 이 일을 내게 맡기셨다고 믿고 최선을 다하라는 겁니다. 일과 신앙을 분리시키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는 직업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하는 것 때문에 직장의 일을 등한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맡은 일이 비록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직장에서 적당히 일하고 월급을 받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식당을 운영한다면 고객의 건강을 생각하고 좋은 식재료를 써야 합니다. 모든 일은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식 속에서 일을 하면 삶 전체가 예배가 됩니다. 그리고 일상의 일과 예배가 분리되지 않습니다. 삶이 예배고, 예배가 삶이 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거룩한 행위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일하는 동기입니다. 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 일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일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인생을 끝내는 그 순간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백성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제자들은 다 도망갔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미완성의 인생 같은데 불구하고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맡기신 미션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는 그 일을 끝내는 순간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미션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질에 생명을 거셨습니다. 모두를 다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에 성공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의 요청에 다 응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만 할려고 하셨습니다.

 

성경적인 안식일의 개념은 안식의 시간과 공간은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모든 일하는 순간 속에서 안식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특정한 한날만이 아니라 일상의 일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물건을 만들면서도 하나님과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주셔서 일을 창의적으로 하게 하시고 아주 짧은 시간에서도 아주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있게 해 주시는 그 놀라운 주님의 도움을 일의 현장 속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견뎌내기 힘들지만 성령께서 불평하지 않고 그 문제를 잘 인내하고 뛰어넘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은혜를 일터의 현장에서 경험할 때 그 일들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 안에서 나만이 아니라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위해서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게 될 때 내 삶이 풍성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이웃까지 그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하는 일을 통하여 매일 기쁨을 맛보고 살아갈 때 그것이 자유고, 안식이며,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결국은 주일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6일 동안 일상의 삶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그 일이 크든 작든, 귀하든 귀하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함께해 주시는 은혜를 맛보며 그 일 속에서도 안식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주일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주일예배 안에서 위로부터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엿새동안 힘써 일하라고 하셨습니까?

 

셋째로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할수록 불안해 합니까? 그 이유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기 전에 이미 아버지로부터 사랑하는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즉 그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도 전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대단한 역사를 이루고 난 다음에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직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일하다보면 우리의 일은 늘 부담스럽고 두려운 것입니다. 일을 해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데 두려움이 오고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다릅니다. 신앙인은 내가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차원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을 기쁨으로 기꺼이 섬기는 것으로 출발이 다른 겁니다.

 

<불의 전차(Chariot of Fire)>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뛴 두 선수에 대한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한 사람은 에릭 리델이라고 하는 신실한 크리스찬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리델은 자신을 인정해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리델은 그의 여동생에게 하나님이 나를 빠르게 달리도록 만들어 주셨어. 나는 달릴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리델은 뛸 때도 쉬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는 달릴 때 기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를 빨리 달리도록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달릴 때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또 한 사람은 해럴드 아브라함스라는 사람으로 그는 금메달을 두고 리델과 경쟁합니다. 그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는 뛰기 전에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시간은 10초 안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브라함스는 쉴 때 조차도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뜀을 통하여 메달을 따야만 자기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쉬고 있는 동안에도 불안했던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좋은 침대에서 멋진 집에서도 쪽잠을 잡니다.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끊임없이 결과를 만들어내어 자기 자신의 삶을 증명해 내기 위해서 끝도 없는 전쟁을 치루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어내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족할만한 더 좋은 결과를 계속 만들어내야 하고 그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렵고 불행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은 피곤한 것입니다.

 

리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리델이 하나님께서 그가 잘 달리도록 만드신 것에 감사하고 거기에 걸맞게 열심히 달릴 때 하나님이 그 자체를 기뻐하신다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그 자체에 감사하고 내가 일할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하면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엿새동안 힘써 일할 수 있습니까?

네째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29-30)라고 하셨읍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면 안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셨던 방식으로 우리도 걸어가면 진정한 안식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신자로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길을 따를 때 그 안에 안식이 있습니다.

 

소 두 마리가 한 멍에를 메게 될 때, 일을 잘하는 소에게 다른 한 마리의 소가 자기 의지를 복종시키고 따르면 그 소는 자기 임무를 아주 쉽고 즐겁게 성취하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일이 서툰 소가 아주 유능한 소와 같이 멍에를 메게 되면 아주 쉽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신의 멍에를 메라는 것은 예수님이 다 해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멍에를 같이 메게 되면 나는 별로 할 게 없고 주님이 다 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쉽고 가볍겠습니까. 주님의 멍에를 멘다는 의미는 내가 주님을 의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한 주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주님이 가시는 방향으로 따라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방향으로 가십니까? 주님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그 마음 안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 즉 생명을 살리는 일, 구원의 일, 이웃을 섬기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 연약한 자를 돌보는 일, 병든 자를 낫게 하는 일,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일들을 하다보면 이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데 안식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평생 생존의 짐만 지고 힘겹게 먹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살다가 갑니까? 그런데 나만을 위해 살면 끝도 없는 전쟁을 치루면서 살아가게 되지만 신기하게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면 나는 물론이고 이웃까지 행복하게 살게 하는 은혜가 일어나는 겁니다. 이웃과 선한 일을 하며 주님을 위해 살다 보니 오히려 나만을 위해 살 때보다 더 놀라운 여유가 생기고, 더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시는 공급하시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비밀이고 신비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십계명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지키지만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없다면 온전히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 속에 빠져 돈만을 위하여 탐욕의 노예가 되어사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이 수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참 안식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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