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2 02:41

2021.8.1. 자기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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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자기발견 (18:9-14)

 

 

우리는 보통 이 세상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게는 자기의 장점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참된 자아 발견이란 자신의 장점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늘진 부분, 자신 안에 있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바로 발견하게 되면 자신에게 큰 축복이 되지만 자기자신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으면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은 많은 크리스챤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잡아 가두고 핍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메섹에 있는 크리스챤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하여 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내게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시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자기자신을 바로 발견했고 그래서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자기자신을 모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자신을 바로 알면 남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자신을 올바르게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교함으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했던 사람으로 한 바리새인을 예로 들었습니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의 기도 내용에서 그가 어떤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인으로서 그는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토색, 불의, 간음 같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11). 종교인으로서 그는 대단한 열심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12).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훌륭한 신자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의 마음이 온통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의를 내세우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경멸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 혼자만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왜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는 자기의 참 모습을 비교를 통해 찾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의 의를 외적인 행위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바리새인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려고 하는 시도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며, 결코 참된 자기발견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자기 허상에 빠지고 자아도취에 빠질 뿐입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자기 발견의 표준을 외적인 것에 두었습니다. 남들과 교육수준이나 생활수준을 비교하여 우쭐해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3:20).

 

자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지적인 자랑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뭣 좀 더 안다고 해서 우쭐거립니다. 또 민족적인 자랑이 있습니다.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은 사회학적인 자랑도 있습니다. 재산이 더 많다, 신분이 높다, 별것도 아닌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무서운 자랑은 영적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기도를 많이 하였다고 자랑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교만입니다.

 

깊이 생각하십시다. 내가 사람 앞에 어떤 모습으로 보이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랑하던 바리새인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다른사람과 비교함으로 자기자신을 높이려는 시도는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일에 있어서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기자신을 올바르게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한 바리새인과는 달리 매우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는 세리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리는 그 당시 죄인들의 대명사로 불리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며, 대중들로부터 지탄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세리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위해 세금징수를 빙자한 토색을 많이 했습니다. 거짓이나 협박으로 타인의 재물을 후려내는 세리는 어느 면으로 보든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본문의 세리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참 모습을 발견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엄청난 죄인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한 세리는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자세를 취했습니까? 그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13). 자신의 허물진 모습을 생각할 때에 그는 너무 부끄러워서 감히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답답하여 그저 가슴을 칠뿐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행동이나 고백을 통해 죄인인 것을 겸손하면서도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기발견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호소했읍니까? 그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라고 간곡히 기도했습니다(13). 눈물을 뿌리며 통회 자복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죄인인 것을 발견한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의를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기 행위에서 내세울 수 있는 의가 없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 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용서를 빈다는 뜻입니다. 또 복을 달라는 뜻도 됩니다. 의를 달라고 하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벌을 면하고 저주를 피하게 해달라는 간구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세울 것도 없고 변명할 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괴로움만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스스로 화를 푸셔서 호의를 베풀어주십시오. 저에게는 더 기대할 것도 없고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선하신 처분만을 기다립니다' -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입니다. 긍휼을 기대하는 자세입니다. 지난날에는 잘못을 하였지만 앞으로는 잘할 것이니 한번만 눈감아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고 처분대로 맡기겠다는, 긍휼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에게 베푸신 그 자비만을 구하나이다. 진정 그 자비를 구하나이다. 아멘.'

나에게 은혜를 많이 달라고 나를 좀 인정해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하고 허물밖에 없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죽어가던 강도에게 베푸셨던 그 긍휼을 마지막으로 베풀어달라고 소원한 것입니다.

 

두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를 사람들의 평가와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평가하기에는 어느 면으로 보나 바리새인이 더 의롭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의 외적인 생활로 볼 때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크게 흠 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당시 죄인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세리는 평가할 만한 가치가 없는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14절 상).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 비유의 결론입니다(14절 하).

 

왜 주님의 관점과 평가는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해 보십시오(삼상 16:7).

우리 주님께서 그 중심을 꿰뚫어 보셨을 때에 바리새인의 마음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세리의 마음은 애통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드리러 오실 때에 어떤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4:6, 벧전 5:5, 3:34).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똑같이 성전에 올라갔고, 똑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지만, 한 사람은 자아도취에 빠졌고 한 사람은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 모두가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주님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겸손히 자신을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어떤 공로도 내세울 것이 없는 허물진 사람들입니다. 다만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때에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세리같은 한 사람을 예를 들고 설교를 마칠려고 합니다.

그는 아람나라의 장군 나아만입니다. 그런데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아내를 위해 시중들던 이스라엘 포로 출신의 소녀가 흘린 말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혹시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지요. 나아만 장군은 그 말을 믿고 이 수많은 선물들을 잔뜩 안고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당연히 엘리사가 직접 뛰어나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상처 부위에 안수하면서"(11)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안보이고 종 한사람이 나와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10)고 하었습니다.

 

화가 난 나아만 장군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때 나아만의 종들이 만류했습니다.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이 보다 더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라도 당신은 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아만 장군의 종들은 지금 나아만은 치료받아야 할 나병 환자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현실'을 지적해 줍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치료의 긍휼을 입어야 하는 환자임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바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흙탕물이 넘실대는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씩이나 몸을 담갔습니다. 나병이 깨끗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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