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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영혼 구원하여 예수님의 제자삼자"(마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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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만남의 삶

 

왕하 5; 1-3, 9-14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인생에서 큰 복중에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입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 좋은 상사와 동료를 만나는 것, 특별히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좋은 목자 좋은 교인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곳에서 목회하면서 때로는 정든 좋은 분들이 떠나가기도 하지만 떠나지 않으시고 제곁을 지켜주시는 좋은 분들이 남아계시고 또한 때를 따라 좋은 분들을 보내어 주셔서 새로운 만남을 즐길 수 있는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경험한 만남의 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는 당시 강대국인 아람나라 군대장관으로써 전쟁 때 큰공을 세워 아람나라를 구원한 사람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부와 권세가 있었고 그는 많은 종들을 거느렸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치명적인 아픔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나병환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나병으로 인해 손발이 썩어 들어가고 악취가 진동하는 비참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도 낫고 하나님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오늘은 나아만이 만났던 복된 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나아만은 그의 집에 일하는 한 작은 소녀종을 통해서 병고칠 정보를 얻었읍니다.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 어린소녀는 전에 아람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을 때 같이 잡혀왔던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지금 나아만 집에서 종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소녀는 자기 주인이 병에서 나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소녀가 주인의 병이 나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이 어린소녀는 나이도 어리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고 노예신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부모님 사는 고향에서 억울하게 포로로 잡혀와 종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은 그를 외국에서 고생하게 만든 원수입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여주인에게 주인이 병나을 수 있는 정보를 주었다는 것은 주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그 소녀는 결코 그런 말을 감히 여주인에게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계집아이는 생명을 걸고 그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나아만장군이 그 어린소녀의 말을 믿고 이스라엘까지 갔었는데 불구하고 만일 병이 안 고쳐졌었다면 이 소녀의 앞날은 불행해 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자기가 불이익을 당할 것 같으면 아무리 상대방에게 유익한 일이 있어도 말하지않고 침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집아이는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했고 병이 나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그는 어린 소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18:3에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그래서 앞뒤를 재고 계산하고 하지 않습니다.

주인 나아만의 병세가 위중하고 선지자 엘리사 같으면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자기가 아는대로 가감없이 여주인에게 알려 드렸던 것입니다.

 

이 어린소녀의 말을 자기아내를 통하여 전해들은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는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결국 어린소녀가 제공한 정보 우리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결국 나아만 장군은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어린 소녀는 나아만장군의 병만 고쳐 준 것이 아니라 나아만 장군의 미래를 살려준 것이고 그의 가정과 그에게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준 중요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불치의 병에서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 더구나 그는 자기가 포로로 잡아온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를 통하여 그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나아만이 참 만남의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밖에는 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참 착하고 동정심이 많고 또한 믿음도 있는 아름다운 어린소녀를 만났다는 것은 나아만이 만남의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왕하 6: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7: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만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살길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면 그것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침묵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지체할 경우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 채 죽을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기에 알려야 합니다. 나병환자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에게 손가락질하고 무시한 사람들을 향하여 달려갑니다.그리고 아람 군대가 물러가고 자유와 풍요로운 복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문지기에게 전합니다.

문지기는 즉시로 성 안에 알립니다. 정탐꾼들이 나가 원수들이 모두 도망쳐버리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양식이 가득한 것을 직접 보고 확인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막대한 양식을 팽개치고 도망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성안의 무리는 미친 듯이 성 밖으로 쏟아져 나갔습니다. 네 명의 문둥병자에게 머물렀던 복과 기쁨이 성안 모든 사람에게 확대됩니다.

 

사마리아 나병환자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을 내가 알았으면 알려주어야 합니다. 나병환자들은 아람 진영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양식과 보물을 취하면서 자기 것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동안 자신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던 성안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렸을 뿐 아니라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3-15)

 

문둥병자들은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잠잠히 있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자세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인구의 73% 58억이 이 사실을 모른 채 저주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만 구원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든지 아니면 선교사들이 그 일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일을 하지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안 한다고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는 것도 아닙니다.

에스더 4장에서 바벨론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할 위기를 만났을 때 모르드개는 자기옷을 찟은후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짚어쓰고 통곡하며 금식합니다. 그러면서 수양딸 에스더왕비에게 부탁합니다. 왕에게 나아가 자기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합니다. 그때 에스더 왕비가 주저하자 너는 왕궁에 있으니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면 유대인은 다른데로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4)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 교회로 나오십시요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에게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병이, 당신의 가정의 불행이, 자녀의 문제가, 당신의 사업의 문제도 그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개인을 살리고 남의 가정을 살리고 나아가 그가 관련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의 민족을 살릴지 누가 압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복된 만남의 삶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기억할 때에 나는 참 만남의 복이 있다 라고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나아만이 만남의 복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는 충성스러운 종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에 도착하자마자 이스라엘 왕을 찾았습니다. 소녀는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를 소개했었지만 나아만은 아람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라고 준 편지가 있었기 때문에 왕을 찾아 갔습니다.

 

그 아람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그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접한 이스라엘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면서 아람의 군대장관이 무리한 요구를 하니 이것은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이 소식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전해졌고 엘리사선지자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소동후에 나아만은 아마 대단히 많은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드디어 엘리사 선지자의 집 문앞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국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이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러 왔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나와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보내어 그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의 처사에 대해서 분노하며 다시 아람나라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온 나아만의 생각에는

엘리사가 내게로 나아와서 영접하르 것을 기대했었는데 아람나라의 영웅이 수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러 왔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직접 나와서 영접하지도 만나 주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나아만의 생각은 엘리사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안수하여) 나병을 고칠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또 나아만이 분노한 것은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요단강은 아름다운 강이 아니라 우기 때만 물이 범람하지 보통 때는 큰 냇물과 같습니다. 이런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라고 하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손과 발이 썩어들어가고 온 몸에 흉터가 심한 나병환자로서는 그를 흉터를 감추게 했던 옷을 다 벗고 냇물과 같은 요단강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이것은 나와 우리나라에 대한 모독이다'고 생각하며 자기나라 아름다운 강들을 언급하며 분노하며 떠나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가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라는 위신이 있는데 그를 영접하지도 안수해주지도 않고 개울물같은 요단강에 가서 그것도 일곱 번이나 부끄럽게도 썩어 문들어져가는 그의 상처투성이인 몸을 드러내고 목욕한다는 것이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자존심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분노하며 어쩌면 이 모독에 대해서 앙갚음 할 복수심을 가지고 아람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만의 처지와 분노가 이해가 되지 않는바가 아니지만 만일 그렇게해서 아람으로 돌아갔다면 그의 나병은 고침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는 나병환자로 살다가 불행하게 인생을 끝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의 생전에 이루었던 전공이나 명예나 권세나 모았던 재물도 아무른 쓸모없이 사라지는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자기 생각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니느웨인데, 요나선지자는 자기 생각대로 다시스로 갔다가 큰 풍랑을 만났고, 다윗은 자기 생각대로 인구조사를 했다가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았고, 가룟유다는 자기 생각대로 예수를 판단하고 은 30냥에 자기 스승을 팔아 배신자가 되더니 그의 종말이 불행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과연 하나님의 생각인지 때로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분노하며 돌아가는 나아만 장군을 되돌려세운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름아닌 바로 나아만 장군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지혜로운 말로서 나아만 장군을 설득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병을 고치러 찾아온 나아만에게 만일에 엘리사 선지자가 어떠한 큰일을 시켰어도 그는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는 그 일을 했을 것이지 않겠느냐 는 말입니다.

 

제가 어릴 때 동네에서 어떤 불치병에 든 환자들이 병이 낫기 위해서 똥물을 마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냥 똥물이 아니고 생 대나무를 작은 크기로 잘아서 그것을 줄에 묶어서 뒷간 화장실 구덩이 속에 집어 넣어놓으면 일정시간이 지나면 그 대나무 속에 말간 물이 채워지면 나중에 그것을 꺼내어 잘라서 그 속에 스며든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제가 인트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미국에서도 아무리 항생제를 쓰도 낫지않는 창자가 썩는 어떤 환자에게는 본인의 변이나 가족의 대변을 받아서 그 대변속에서 치료에 도움되는 바이러스를 양성한 후 그 바이러스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치료법도 있다고 합니다.

 

나아만의 종들의 말이 그말입니다.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단순히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인데 왜 그 일을 못하겠다고 하시느냐 하는 말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나아만처럼 체면과 특권의식. 어떤 선입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나아만이 복이 있다 라고 여기는 것은 그의 지혜로운 종들은 그 상황에서 나아만에게 어떤 자존심. 체면 특권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지금 나아만장군에게는 그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나아만에게 그 순간 그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게 그의 해결하고자 했던 애초의 문제였습니다. 또한 그것이 그가 얻고자 했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종들은 격노하고 있는 자기들의 주인에게 조언을 드려서 바로 그것을 생각나게 했고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것을 막았던 것입니다.

 

지금 굉장히 분노하여 아람으로 돌아가려는 그 주인을 막아서서 그 주인의 결정과 반대되는 말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이 화를 자초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대게 아첨꾼들은 왕의 비위를 거슬리는 말은 하지않습니다. 그저 유익이나 사실여부를 떠나서 주인의 주인을 추켜세우는 말만 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종들은 그들의 주인을 위해서 모든 예상되는 불이익을 각오하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드렸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싫어했던 요단강에서 목욕하는 일의 의미를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씻어 깨끗하게 하는 일(병이 낫는 아름다운 일)'로 강조했습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그러나 나아만장군은 아람으로 돌아가려는 화가 난 마음을 내려놓고 그의 종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묵묵히 요단강가로 내려가 일곱번 목욕을 했을 때 문둥병이 걸렸던 그의 육체는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변했습니다.

 

나아만장군에게 정말 조언이 필요했을 때에,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아야 했을 때, 내 기대보다 내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했을 때 그 사실을 조리있게 말해줄 수 있는 종들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아만이 받은 인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이 예배를 가는 도중에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집니다.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다른 한 사람이 대답합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랍비한테 물어보자"

질문을 던진 사람이 랍비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랍비는 정색을 하며, 대답합니다. "형제여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기도 중에 담배를 피우다니, 그럴 수는 없다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른 한 사람이 말합니다.

"네가 질문을 잘못해서 그런 거야. 내가 다시 물어볼게"

이번엔 다른 한 사람이 랍비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그러자 랍비는 환한 미소로 대답합니다.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얼마든지 기도는 드릴 수 있다네"

 

담배피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했습니다. (25:11)

여러분들이 비신자나 장기결석자들에게 나아가 지혜로운 말로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말씀드려서 그분들이 말씀듣는 자리로 나아오도록 그래서 그분들이 마음과 몸이 치유받고 구원을 얻게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여러분 이 나아만장군이 아람나라에 돌아가서 누구에게 보상했겠습니까?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그 어린소녀가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감사하고 많은 선물과 함께 그 소녀를 고향집으로 돌려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또 누구겠습니까? 그의 종들입니다. 사실은 화를 낼 일도 아닌데 씩씩 거리며 돌아가고 있을 때 그의 화를 진정시키고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그의 종들에게 사례하며 그들에게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우리교우들이 새해를 살아가면서 이런 복된 만남의 복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혹 그런 환경이 못되시면 여러분들이 남을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과 또 지혜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된 만남을 제공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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