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6: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6: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은 교회가 지키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먼저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부모란 무엇입니까? 한국어적으로 보면 부모란 가족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어릴때는 부모는 보육자입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존할 수 있게 되며 자녀들은 세상은 안전하고 살아갈 만한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자녀가 자라가면서 부모는 교사가 됩니다. 부모를 통해서 말과 생활문화를 배웁니다. 그 결과 부모는 부모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자녀에게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유년기를 어떤 부모와 함께 보냈는가에 따라 자녀의 가치관과 성격부터 정치성향까지 달라지기도 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난 경우 사회적 성격도 원만하게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의 특기와 재능을 발현하는데 나쁜 부모의 경우는 인격부터 시작해서 학업, 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평생이 꼬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녀가 청소년기가 되어가면서 부모는 자녀에게 장애물같은 존재가 됩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에게서 배우게되고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게되면서부터 부모와 자녀관계에서 결속력이 약화되고 올바른 가치관 지도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청소년으로 자라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한다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같은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끊임없이 베푸는 희생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였다는 말이 있읍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생이 아니라 현생에서 동의 없이 자식을 낳았다고 죄를 빚진 현생의 빚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부모세대는 이 시대를 일으킨 일군들이었으나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들의 소외감은 예전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이로인한 노인성 정신질환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노인들이 병원치료를 받는 곳이 거의 없어 전체 노인의 25-40%가 정신장애로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힘들고 서럽고 외롭습니다.

 

사오정과 오륙도란 말의 뜻을 아십니까?

사오정-45세가 되면 직장에서 정년퇴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륙도-50-60세에 퇴직하지 않으면 도둑놈이란 말입니다.

아직도 몸은 멀쩡한데 퇴직하면 할 일이 있습니까? 할 일이 없으니 삼식이 소리 들어가며 삼시세끼 얻어 먹을려니 아내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좀 낫습니다. 직장과 대학교에서는 정년이 없읍니다. 학교직원이든 교수이든지 본인의 건강과 능력이 되면 계속 일 할 수 있습니다. 정년퇴직이 없다는 말입니다. 노후준비도 안된 사람을 강제적으로 퇴직시킬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침례교단도 목사정년이 없읍니다. 본인이 할 수 있으면 계속 사역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야 장로교 목사이니 70세가 되면 퇴직할 것입니다만 간혹 퇴직후에 어떤 일을 해야 보람되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문득 한 평생을 주님과 가정을 위해 살아 왔는데 나이 들어갈수록 사회로부터 찬밥신세가 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인가 아니면 이 시대가 악해져서 그러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려장이란 말이 있듯이 어차피 나이들면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고 하면 60세가 지나면 하나님께 저희들을 다 천국으로 데려가시면 좋을 탠데 왜 이 땅에서 20-30년을 더 살게 하시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어버이주일을 맞아 그 답을 성경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부모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까?

물론 (20:12)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명령하심으로 부모란 공경의 대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출애굽기를 쓰기 수백년 전에 성경은 부모와 관련된 두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노아의 자식에 대한 축복과 저주 사건입니다.(9:18-29)

의인 노아가 실수를 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노아가 농사를 하여 수확한 포도로 포도주를 담궈서 그것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알몸으로 장막에 쓰러져 잠을 잤습니다. 이 당시에는 포도 농사를 많이 했는데 냉장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포도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발효를 시켜야 했습니다. 그것은 자연히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 때 포도주는 음료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아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대표자로서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술에 취한 것은 잘못입니다.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었습니다. 세 아들 중 함은 아버지 노아가 장막 안에서 술 취해 하체를 드러내고 자고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고했습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주었습니다.

함은 잘못한 것이고 셈과 야벳은 잘한 것입니다. 함은 기본적으로 사실을 말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잘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실수를 가리워 주었어야 했습니다.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에서 '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곧 성적 욕망과 호기심의 발동으로 유심히 보게 된 것이고 그 모습을 즐긴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던 것처럼 악의적으로 두 형제에게 얘기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를 존경하기로 하고 아버지를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사건이후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했습니다 (24-27).

노아가 술에서 깨어 저주하고 축복한 것을 보면 노아가 화가 나서 보복 차원에서 저주를 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말한 그대로 성취시켜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후대의 축복을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자로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같은 예는 이삭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27:24-29)

이삭은 야곱보다 들로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좋아하는 들사람 기질을 지닌 외형적인 성격의 에서를 더 좋아했고(25:28), 에서에게 축복을 내려 그를 가문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읍니다. 하나님은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명히 일러준 바 있기 때문에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을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기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빈 그 기도가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부모란 하나님께서 자녀의 축복을 위해 세우신 권위자란 사실을 다시한번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부모가 축복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 후 몇백년 후에 나온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습니다.

(20: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부모는 공경받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할 때에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신약에서도 반복됩니다.

(6: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6: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러한 즉 부모는 후대의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임을 가르쳐 주는 사건이 신약에도 나옵니다. (2:41-51)

 

열두 살 시절의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신 다음에, 나사렛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은 12살때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13살이면 성인으로 인정을 하고 여러가지 종교적인 행사에 참석을 시키고 그런답니다. 12살이면 이제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부모님이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유월절 절기가, 일년 명절 중에 최대의 명절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율법도 배우고 각지에서 온 경건한 사람들도 만나고 너무나 은혜스럽고 너무나 열기 띤 그런 절기를 마친 다음에 가족들이 다 나사렛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온 가족이 다 가면 열두살 어린 나이의 예수님도 같이 따라가야 하는데, 따라가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43)

온 가족이 북쪽으로 나사렛을 향해서 가는데 저녁 나절에 보니까 아들 예수가 그만 없어진 거예요.(43a) 그래서 놀라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왔고, 사흘 후에 성전에서 찾게 됐습니다. 성전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랍비들하고 여러가지 대화를 하면서 율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육신의 부모님들이 놀라고 애를 태웠던 것 때문에 예수님을 책망했습니다.

육신의 부모님의 책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12살 때 이미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 이 성전에 있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씀을 한 것이지요.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육신의 부모님 밑에 스스로 들어가서 그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로서 인정하셨다는 말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시든지 부모님이든지 윗사람이든지 그 분들의 뜻에 내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혹은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께서 혹은 윗사람이 더 크고 더 선한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 선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될 때까지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님이 될 때까지 선생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급자는 상급자가 될 때까지 상급자에게 순종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가정 속에서나 혹은 교회 속에서나 혹은 세상 속에서나 윗사람에게 순종을 할 줄 아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순종하며 자라가게 될 때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을 받았습니다.(52)

 

또한가지 사건은 요 19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영혼이 떠나시기전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모른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모친인 마리아를 제대로 모시지도 못한 예수님은, 어떻게 보면 부모공경하고는 거리가 먼 분처럼 보입니다. 더욱이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자에게 부친의 장례와 가족들과의 이별도 허락지 않으신 예수님의 말씀도 부모에게 무정하고, 가족에게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마지막 순간을 다루고 있는 이 본문에서,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이 어느정도 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이제 서른 셋의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는 마리아의 심정이 어떻겠는지,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를 십자가 위에서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또 어떻겠습니까? 자신이 십자가를 짊으로써 인류 구원의 대업을 이루기는 하셨지만, 홀로 남아있을 어머니를 생각할 때, 어찌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없으셨겠습니까?

이에 예수님은 어머니 곁에 서있는 요한을 가리키며,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19:26)”고 하시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19:27) 하시면서, 자신이 끝내 모시지 못한 어머니를 사도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인류구원의 대역사가 절정에 이른 그 때, 그 자리에서 예수는 어찌보면 사사로운 일일 수도 있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지상 최고의 슬픔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내 아들이 죽었어야 하는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야말로 남은 생은 살아있지만 사는게 아닌 고통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제자 요한을 통하여 그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의 생각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지나온 행적을 통하여서 그가 약속하신 메시야의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에 아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놀라운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의 혈육이 아닌 영적인 혈육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않음이 없나니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존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으로 간주하셔서 하나님께서도 존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삼상 2: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다른 제자들은 다 순교하였어도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마리아를 모신 사도요한의 장수하신 것이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설교를 시작하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란 후대의 축복을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이며 축복의 도구입니다.

이 큰 사명을 기억하시고 자존심을 가지고 축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지난주간에 학교에 간 손녀 나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할아버지 픽업와 주세요.”

? 성필이가 픽업하러 갔는데 성필이 차를 타고 오지 않고서...?

오빠가 친구들과 볼링하고 나중에 집에 간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집에 빨리 가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하고 픽업하러 갔습니다.

픽업하려 정션으로 가면서 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손녀를 데리고 있기는 하지만 대게 틴에지들이 그러하듯이 학교를 갔다오면 자기 방에서 시간을 다 보내기 때문에 그 얼굴 보기도 힘들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필요해서 픽업해 달라고 하더라도 아 손녀 얼굴한번 더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기뻤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픽업해 오면서 물었습니다.

나라야 너가 나를 픽업해 달라고 했을 때 내 마음이 짜증났을까? 아니면 기뻣을까?”

그의 대답이 아마 짜증도 나고 기쁘기도 했겠죠”.

제 대답이 아니 기뻤다. ”

그러면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나라야 너가 만일 답답하거나 필요한 일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짜증내실까 아니면 기쁘하실까? ”

기뻐하시겠죠. ”

그렇다 맞다 하나님 자주 찾고 기도드려라

그러고 부터는 나라의 표정이 많이 밝아지고 명랑해져서 저도 마음이 참 기쁘고 좋았습니다.

저는 부모된 저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된 우리들 마음속에 자녀를 아무리 도와주어도 기쁘고 또 주고싶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부모된 저희 노년세대를 향상 이 세상의 시선이 아무리 곱지않고 귀찮은 존재와 같은 여김을 받으시더라도 우리 자신만큼은 우리의 정체감 즉 부모는 자식의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임을 늘 기억하사 자부심을 가지시고 자녀들을 늘 축복하시면서 자랑스럽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축복을 위해 이 땅에 두신 부모님 그리고 연로하신 교우들을 존중하시고 귀히 여기시고 순종하셔서 꼭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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