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16:1-13)

 

여러분 친구가 있습니까? 얼마나 됩니까? 성격따라 친구가 많을 수도 있고 또 적은 수의 친구라도 형제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던 친구가 있으면 좋고 친구가 많으면 더욱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주님이 말씀하신 친구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예수님의 비유-칭찬들은 불의한 청지기

 

오늘 주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

여기서 말하는 어떤 부자는 당시 갈릴리 지방에 흔히 있던, 큰 땅을 소유한 지주를 말하는데, 청지기를 세워두고 자기는 다른 데에 가 있는 부재자 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지기가 자신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을 들은 주인은 청지기에게 해고통보를 합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2)

갑작스런 해고 통보와 함께 결산서를 제출하라고 명령을 받은 청지기는 독백을 합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3)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청지기는 해고를 당한 후에 자신의 미래를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4-7)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기름 100말을 빚진 자에게는 기름 50말로 , 100석을 빚진 자에게는 밀 80석으로 계약서를 고쳐 쓰라고 합니다.

이 기름 100말은 800갤론이 넘는 엄청난 양입니다. 당시 가치기준으로 보면 1000데나리온으로, 3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10만불이 넘는 액수입니다.

100석은 더 많습니다. 노동자의 8년 품삯에 해당되는 2500데나리온 즉 25만불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인에게 이렇게 큰 액수의 빚을 진 사람들을 불러서 청지기가 자기 마음대로 빚을 깎아주는 것은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기름을 빌릴 경우에는 80%의 이자에다가 가격 변동에 대비하여 20%를 더해서, 전부 100%의 이자를 물게 되어 있었습니다. 밀의 경우에는 밀은 20%의 이자에다가 가격변동에 대비한 5%를 더해서, 전부 25%의 이자를 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동포에게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23:19)

 

또한 고리대금은 도둑질이라는 율법의 규정 때문에, 당시 부자들은 청지기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나중에 고리대금으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아닌 청지기가 책임을 지고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청지기를 대신 세워놓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악하다고 합니다.

 

당시 청지기들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주로 쓰던 방법은, 빚진 자들과 계약서를 작성할 때 처음부터 이자를 포함시켜서 계약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기름 100말을 빚진 사람은 사실 50말을 빚졌는데 계약서를 쓸 때 을이 갑에게 계약기간까지 50말을 갚지 않으면 매년 50말 이자를 물겠다고 쓰면 고리대금을 금지하는 율법 조항에 걸리니까, 처음부터 아예 안전하게 을은 갑에게 100말을 빚졌다라고 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청지기가 기름 100말을 기름 50말로 고쳐 쓰라고 하는 것은(6), 100%의 이자를 붙여 작성한 계약서를 원래 빌린 양 대로 적게 한 것입니다.

 

또 청지기가 밀 100석을 80석으로 고쳐 쓰게 한 것은(7), 당시 25%의 이자를 붙여서 계약서를 썼던 것을 원래 빌린 양대로 바꾸어 적게 한 것입니다. 원래 80석을 빌렸으면 연 이자 25%는 밀 20석인데, 그것을 포함하여 계약서에는 100석이라고 썼던 것을, 원래 빌렸던 80석으로 고쳐 쓰게 했다는 말입니다.

 

청지기가 이렇게 행동한 것을 본 주인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 (8)

그에 대한 주인의 마지막 평가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청지기의 지혜는 그가 해고당하기 직전의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을 잘 살려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했다는 것이 그의 지혜입니다.

 

그는 당시의 고리대금 금지법에 비추어볼 때 평소에는 그 법에 걸릴 만한 일을 교묘하게 해왔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정직한 행동을 함으로써 법을 지켰습니다. 또한 그는 주인이 고리대금 금지법에 걸리지 않도록 깨끗하게 정리해서 결산서를 넘겨줌으로써, 주인을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청지기는 빚진 자들의 엄청난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그가 해고된 뒤에 그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자들보다도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장래를 보장받기 위하여 더 슬기롭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9)

 

여기에서 너희는 제자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권면내용을 보면 재물사용에 대한 권면으로 오히려 부자들에게 할 권면인 것 같은데 정작 권면을 듣는 대상은 가난한 제자들입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에게 이 상관도 없이 보이는 재물에 대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가난하다보니 오히려 재물관리에 질린 부자들보다 오히려 더 재물에 대한 기대심리가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재물에 대한 기대심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됨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사명도 감당 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권면을 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권면-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주님의 권면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물은 선한 것도 불의한 것도 아닌 삶의 편리를 위한 하나의 도구일뿐인데 왜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말은 재물을 얻는 과정이 불의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신 이유는 재물로 인한 피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의 재물은 불의하게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살인, 탈세, 강도, 도둑질, 부동산 투기, 심지어 전쟁까지도 다 돈과 연결되어 일어납니다. 결국 돈이 그 모든 문제의 핵심에 있습니다. 정말로 돈이 불의의 세상을 지배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물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재물은 반드시 없어질 날이 옵니다. 재물 자체가 세상에서 없어지기도 하고,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전혀 재물이 없는 상태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없어지고 말 허무한 재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이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즉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의 노예인지 아닌지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청지기는 해고통지를 받고 재물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통해서 친구들을 사귄 것입니다.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매니저가 되어 돈을 초월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그들은 도움을 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을 증언할 것입니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가 헌금한 돈으로 파송받은 선교사에 의해서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국문 앞에서 우리를 영접하고 환영할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부유함은 그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많이 줄 수 있습니까?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엘리야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사렙다(사르밧)라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그곳은 이스라엘도 아니고, 두로와 시돈 지역, 즉 이방인 지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이왕이면 부자에게 보내셔서 잘 먹고 잘 쉬게 해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과부에게, 그것도 아주 가난한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그 과부는 곧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딱 한 끼 먹을 것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것을 달라고 해서 먹도록 하십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자 과부가 대답합니다.

저는 지금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한 끼 먹고 죽으려고 땔 감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먹으면 더 이상 먹을 게 없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 그래요? 그럼 됐습니다.’라고 하는데, 엘리야는 그래요? 그럼 그걸 내게 주시오. 내가 먹겠소.”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자기 말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그녀의 집의 밀가루와 기름이 비가 내릴 때까지 떨어지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과부가 얼마나 고민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한 끼를 먹고 죽으나 안 먹고 죽으나, 어차피 죽는 것은 같습니다.

그럼 엘리야의 말대로 이 음식을 그에게 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자기가 먹고 죽을 것인가? 과부는 하나님을 알던 사람도 아닌데도 엘리야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모험을 합니다. 그래서 기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적을 일으키실 때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그리고 약속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28장의 지상 대 명령도 가서 제자 삼으라고만 하신 게 아니라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약속도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위험 부담을 안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느냐 하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도 없을 때 하는 것입니다. 꼭 내가 돈이 남아야 남을 돕고, 좀 시간이 나면 가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없고 시간이 없지만 주님이 원하시고 내게 명령하실 때 가난한 중에 남을 돕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와서 섬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는 반드시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삶에는 기적이 별로 안 일어납니까? 명령과 약속은 아는데 믿음으로 순종을 하지않기 때문입니다.

1 더하기 12인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며 명령과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면, 1 더하기 0이라도 10이 될 수 있고 100이 될 수 있고 100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권면-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

 

예수님은 영원한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으로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 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0-12)

이 세상의 재물은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하늘에서 우리가 받을 보화는 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재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관리하는 남의 것이고, 하늘의 보화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누릴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책임을 맡은 청지기이기도 하지만, 물질과 재능과 시간과 주어진 모든 것의 청지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오늘 본문에서 청지기 개념을 물질문제와 연관시켜 지적하십니다.

청지기라는 말 자체가 이미 남의 것을 맡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남의 것이라는 말은 직설적으로 우리의 재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 남의 것’, 즉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돕고, 주신 시간과 재능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 사용하며 충성할 때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미래를 위한 재물 사용의 지혜를 말씀하신 다음, 마지막으로 재물과 하나님 중 양자 택일을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3)

 

그런데 고대사회에서는 일단 누구의 종이 된다는 것은 전폭적으로 그에게만 충성을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00% 자기 주인만 섬겨야지, 두 주인을 놓고 6040으로 섬기는 식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재물의 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면, 하나님께 전폭적인 충성을 드리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전폭적인 충성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맘몬에게 노예가 되지 말도록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100%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한 순간 한 순간, 우리의 능력의 하나 하나, 우리의 정성의 한 올 한 올이 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인 충성으로 섬기면서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재물을 전폭적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을 맘몬 섬기는 일에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들과 교인들이 맘몬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재물을 영원한 소유물로 쌓는다면, 그는 그 재물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망치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축적한 재물에 두고 그것을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리는 장벽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 바로 거기에 우리의 신뢰, 우리의 안전, 우리의 위로와 우리의 하나님이 있다. 재물을 쌓아두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재물을 경히 여긴다면, 재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업이 잘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기회가 더 늘어난 것으로 보게 됩니다. 본문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은 재물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면,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배상을 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희생적으로 나누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것이 제자들의 모델이 됩니다. 그러한 삶이 없다면, 일단 정직하게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재물을 중하게 여긴 자신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재물에게 주었던 전폭적인 충성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누군가가 참 좋은 말을 했습니다. 굉장히 귀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은 복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복을 낭비한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복을 세어본다.

착한 사람들은 복을 나눈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이 비록 없는 재물일지라도 친구를 만드는 일에 사용함으로서 삶이 외롭지않고 나아가 천국에서 주님과 그 친구들이 제자들을 영접함으로서 환영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자신을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재물로 친구를 만드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친구를 만드는 일은 쉽습니다. 받으러하기 보다는 주면됩니다.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고충을 들어주고 도움을 주다보면 그들이 좋은 친구가 됩니다.

 

우리교회의 중직자들은 비록 넉넉한 삶은 아니나 천국과 그 상급을 바라보며 헌신과 대접함으로 그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참다운 부자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그와같은 준비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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