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엘리와 아이 사무엘

삼상 3: 1-10

 

오늘 말씀은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 즉 어른과 어린아이의 모습이 대비되는 그런 본문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게서 제사장을 찾아오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는게 당연할텐데, 이 아이 사무엘을 찾아오시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한번 살펴보면서 은혜와 도전이 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 가운데서 첫번째 도전은 우리의 삶이 어떤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지 한번 점검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빈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때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제사장 엘리를 비롯한, 그 이전의 모세/여호수아/사사들, 이런 지도자들이 살았던 시대를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했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당시는 왜 그랬습니까? 우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라고 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시대가 지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사시대의 말기였습니다. 또한 시대가 좀 변했다라고 하는 것 외에, 특별히 엘리 제사장 때의 상황과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2:12) 이전의 번역을 보면, 그의 아들들이 불량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13부터 나오는 이 아들들의 불량한 행실을 보면, 제사드린후 율법이 정한대로 제물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7:28-34), 고기를 삶고 있는 중에 갈고리를 던져서 나오는 대로 가져갔습니다. , 구워먹기 위해 생고기를 요구했고 (vv.15-16), 심지어 회막에서 일하는 여인과 동침까지 했습니다 (v.22).

그러니 이들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그 아들들의 나쁜 소문을 듣고서, 이들에게 말하는데 좀 점잖게 타이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들이 듣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기때문입니다. 왜냐? 행실이 나빠서, 다른 말로 불량해서.

그런데 이 불량하다라고 하는 이 말이 성경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다닐때, 다윗과 그를 따르는 군인들이, 나발이라고 하는 아주 부자의 가축을 들에서 지켜줬습니다. 나발이 양털을 깍고 잔치할때, 다윗이 음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나발을 치려고 할때, 종들이 보고 부인에게 말하고 또 그 부인이 재빨리 다윗에게 가서 그 화를 누그러뜨립니다. 이때 이 나발에대해서 그 종들과 부인인 공통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뭐냐면, 그는 불량하다라고 말합니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수 없나이다당신이 빨리 손써야 합니다.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소서”(1 Sam 25:17, 25)

이 불량하다라고 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벨리알인데, 그 원뜻은 ‘useless, 쓸모없다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에 대한 평가가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뇨?

엘리의 아들들 역시 제사장의 직위와 능력이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불량하다, 벨리알, 쓸모없다였습니다.

혹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 건강과 젊음, 시간. 이런 것들이 나에게만 useful하지 않습니까?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벨리알, useless하다고 하지는 않는지 신앙 안에서 돌아볼 수 있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도전은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데 게으르지 말아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useless한 엘리의 아들들대신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 바로 이 잔심부름꾼 아이 사무엘이었습니다.

4-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그에게 갑니다. 그런데 엘리는 자기가 안불렀다고 그냥 가라고 합니다. 이 일이 반복적으로 2번 더 일어났는데, 세번째 엘리가 하나님께서 아이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을 코치해 줍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단순한 심부름꾼이었던 이 어린아이 사무엘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그 뒷모습을 쳐다보는 늙은 제사장 엘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이 오랫동안 고요하시고, 이상도 보이지 않더니 이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그래 다른 젊은 사람 찾아서 말씀하시나보다, 그런데 왜 내 제사장 아들들 있는데, 이 아이 사무엘일까?’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가요?

그럼 이때 엘리는 뭐했을까요? 어린 아이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음성을 듣려주시는 시간동안, 어쩌면 엘리는 그날 밤, 날이 새도록 하나님께 매어달려 기도하지는 않았을까요?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발견하는 영적 교훈은 우리가 자식들, 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울어야 하고, 회개하고, 간구해야 한다면 게으르지 말고, 한 박자 빨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고 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게으름이란 단어는 중에 acedia (ßakedeia)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두 개의 greek으로 된 것인데, (a) 라는 말은 없다라는 뜻의 부정접두사이고, 케도스(κδος)라는 말은 영어의 care 돌본다. 그래서 합하면 돌보지 않음. 돌보지 않는것, 이것이 게으름의 본래의 뜻입니다.

자녀의 신앙이, 혹 다음세대가 염려가 된다면, 게으르지 말고 그때 그때 돌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그리고 지금 하나님 앞에서 매어달리고 부르짖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신앙적 도전은,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우리의 작은 것이라 할지도 드려서 쓰임받을 수 있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사무엘은 한낱 아이였습니다. 많은 재산을 가졌던 나발과 달리, 이 사무엘에겐 그 어머니가 일년에 한번 올때 가져다 주는 옷 한벌이 전부였습니다(2:19). 또 지위와 능력을 갖췄던 엘리와 아들들과 달리, 그는 아직 심부름이나하는 잡부였습니다.

가진 것 없고, 능력도 없고, 위치도 안되는 어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을때, 아이 사무엘은 자기를 내어 드립니다.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하나님, 엘리한테 말하세요, 전 못해요가 아니었습니다.

혹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가진 것도 없는것 같고, 능력도 안되는 것 같고 혹시 그런 마음이 듭니까?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실때,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사용하신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때, 실상은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고후 4:9-10).

능력이 많은 데도, 하나님 보실때 무능한 자로, 부유한데도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 취급받아, useless 한 우리의 삶이 아니라, 비록 연약하고 가지고 없는 저희들의 삶이라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때, 하나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드릴수 있는, 이 아이 사무엘 같은 우리 개인의 믿음, 또 우리 가정, 나아가 저희 맨하탄교회의 사역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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